광주광역시 자원봉사기업협의체의 ESG 기반 지역사회 제시 및 해결을 위해 [착한 걸음 기부 챌린지]를 공동사업으로 5개 기업(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 KT 전남/전북 광역본부, 광주광역시 북구시설관리공단, 광주환경공단, 기아국가유산지킴이가 참여하여 5.18 day 걷기 기부 챌린지와 44주년 5.18민주화운동 및 오월정신을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에서 기획했다.
기업 임직원과 가족 그리고 광주시민이 함께 캠페인을 통한 탄소 저감 활동에 동참하고, 자발적인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걸음 목표 달성시 조성된 기금은 광주지역의 돌봄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또한, 챌린지와 더불어 시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으로 더욱 의미 있는 “빛”나는 워킹 기부 챌린지에 많은 시민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이번 행사는 광주광역시 1호 공원인 광주공원 일원에서 “착한 걸음 기부 챌린지 출범식을 시작으로 5월 18일(5.18 44주기를 기념한 걷기 일 수)부터 6월 3일까지 18일 동안 걸음 수를 기부하는 행사로 마련이 되었다. 기부활동은 KT에서 제공한 ”나눠정“ 앱을 활용해 기부를 할 수 있고 챌린지는 6명당 하나의 크루로 편성되어 합산하는 방식이다.
출범식에는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 35명(청년봉사단 포함), 광주광역시 북구시설공단 18명, KT 전남/전북 광역본부 20명, 광주환경공단 22명(어린이와 부모 2명)이 참여했다. 기아국가유산지킴이는 5명(한병기, 김오현, 이형만, 고경님, 박미경)이 참여해 5개조로 편성 광주공원에 대한 역사해설을 진행했다.
행사는 착한 걸음 기부 챌린지 취지 설명과 제44주기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광주의 제2의 진산 광주공원의 숨어있는 국가유산 및 광주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18 day 역사와 함께하는 착한 걸음 기부 챌린지의 마무리는 광주의 대표 누정인 희경루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희경루는 광주광역시에서 2018년 착공 2023년에 완공해 현재에도 주변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이번 행사의 마무리는 희경루 주변에 꽃 심기로 마무리했다.
■ 광주공원은 광주에 살아있는 박물관 아니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광주 시내 중심가에서 광주천을 건너면 바로 만나게 되는 광주공원은 광주의 제1호 공원이다. 그 역사만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구동 공원'으로 불렸던 광주공원. 아직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구동 공원이라 부른다. 왜 광주공원이란 이름을 두고 구동 공원이라 했을까? 광주공원은 고려 시대 때부터 성거산聖居山이 있던 곳이다. 이 산의 형태가 마치 거북을 닮아 '성스러운 거북이 형상의 산'이란 뜻으로 성거산이라 했다. 그래서 광주공원 옆의 동네를 지금도 구동龜洞이라 하고 광주공원을 구동공원이라 하게 된 것이다.
예로부터 거북이는 십장생 중의 하나로 상서로운 동물이요, 장수와 복을 상징했다. 그런데 성거산의 이 거북이는 목을 쭉 빼고 광주천을 향해 길을 떠나려 하는 형상이라 한다. '거북이가 떠나버리면 광주고을이 발전할 수 없다'라고 믿었던 옛사람들은 거북을 잡아두기 위해 거북의 몸통에 해당하는 위치에 성거사聖居寺를 지었다. 그리고 거북이 목 부근에 무거운 오층석탑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광주공원에서 서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서 있는 보물 제109호인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광주 서오층석탑)'이다. 천년이 지난 지금 성거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석탑은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북이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홀로 거북을 잡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다.
■ 뼈아픈 역사 속에 탄생한 광주공원
뼈아픈 역사의 서막 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통치를 위해 조선 곳곳에 신사神社를 세웠다. 1913년, 그들은 광주 성거산에도 신사를 세웠다. 일본도 이 터가 좋다는 걸 알았나 보다. 영험한 기운이 넘치는 성거산에 그들은 신사를 세운 것을 보면. 일제는 신사를 만들면서 이 일대에 공원을 조성했다. 산을 파헤쳐 우리의 토종 나무들을 베어내고 벚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해서 광주에 최초의 공원이 생겨났고 성거산의 거북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이후, 1940년 그들은 광주신사光州神社를 국폐소사國幣小社로 승격시키며 다시 한 번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공원을 더 크고 울창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외래종 나무를 옮겨 심었다. 이 과정에서 거북의 등허리를 파헤치고 발을 끊어내며 옛 성거산의 모습을 완전히 훼손시켜 버렸다. 이로써 천 년 동안 평화롭게 광주를 지켜왔던 성거산의 거북은 제 모습을 잃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굽이굽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위로하다.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아픔 뒤에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뼈아픈 역사의 탯줄을 달고 나온 광주공원은 해방 후, 그 상흔을 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해방되자 신사를 없애고 그 자리에 현충탑을 세웠다. 광주공원 현충탑은 광주에서 가장 큰 현충 시설로 6·25 때 나라를 위해 희생된 호국영령들을 기리고 있다. 현충탑 바로 옆에는 위패봉안소가 마련돼 있어 광주와 전남 출신의 호국영령 1만 5,800여 명의 넋을 기리고 있다. 시민회관 앞 광장에는 1960년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다 산화한 4․19의거 영령추모비를 세워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 4.19학생 운동에서 5.18민주화운동까지 품은 광주공원
80년 5월에 공원 앞 광장에는 구 전남도청과 함께 시민군의 본부가 되어 항쟁을 이끌어 갔던 광주공원 시민회관. 여기에서 5.18 당시 시민군은 광주공원 앞 광장에서 시민군 조직을 나누고 지휘하고 시민군의 질서를 유지했다. 또한, 화순, 담양, 보성 등 각지에서 무기고에 있던 카빈총과 실탄을 가져와 기본적인 군사훈련과 차량을 통제와 성난 시민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광주공원 입구에는 5․18사적 표석이 세워졌다. 그리고 2010년, 이곳에는 빛고을시민문화관이 들어섰다. 광주공원이 안고 있는 아픔의 역사를 문화와 예술로 위로하고 승화하기 위함이리라.
■ 광주의 대표 누정 희경루
조선 시대에는 광주읍성안, 현 충장로 우체국 인근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조선 시대 여러 차례 발간된 읍지에 객관 북쪽에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우체국 근처에 향청(鄕廳)이 있었던 점이 근거가 된다.
희경은 함희상경(咸喜相慶)을 줄인 말로, 모두 기뻐하고 서로 축하한다는 뜻.
유래는 만호(萬戶) 노흥준에게는 소매라는 기첩(妓妾)이 있었다. 그런데 광주 목사 신보안이 소매와 정을 통하다가 노흥준에게 현장을 걸려서 구타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428년 봄에 일어난 일이며 1430년에 알려졌다. 일단 소매는 관기(官妓)였으므로 첩으로 삼는 것은 불법이었다(신보안도 마찬가지이지만, 사건 몇 개월 뒤 이질로 사망하여 처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 더 문제인 것은 '왕의 대리인'으로 온 관리를 구타했다는 사실이다. 노흥준은 곤장을 맞고 변방으로 쫒겨났으며, 광주목이 무진군으로 강등되어 장흥부 소속이 되었다. [세종실록] 그러다가 1451년, 문종 원년에 다시 광주목으로 환원되었다. [문종실록]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침 짓고 있던 누각 이름을 희경루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 말로 다 하지 못한 광주공원의 기억들
광주공원에는 광주를 상징하는 향교가 있고, 광주가 군과 목을 오르내리는 동안 이 고을에 수령으로 지나간 인물들에 대한 비석군과 과거의 행적으로 인해 욕을 먹는 사람의 비석까지 공존하고 있어 후세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또한, 호남제일의 의병장 심남일의병장과, 용아(박용아)와 영랑(김영랑) 시인의 시비까지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다. 궁금하시다면 꼭 한번 광주공원을 찾아보기를 추천해 드린다.
광복 70여 년.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도 유난히 큰 아픔을 겪어야 했던 광주. 그러나 광주공원은 그 시간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스스로의 탯줄을 끊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광주공원이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모르겠지만 광주공원의 거북을 지키는 것이 광주를 지키는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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