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식 칼럼] 영화 <나랏말싸미>의 모티브가 되었던 위서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의 시가

문귀호 선임기자 승인 2024.07.05 05:56 | 최종 수정 2024.07.05 16:03 의견 0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9년에 필자가 거주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밸리의 영화관에서 한편의 한국영화를 매우 흥미롭게 관람했다. 언어는 우리말이었고 아래에 영문으로 자막이 나왔다. 관객의 대부분은 재미 교포들이었다. 필자는 물론 대부분의 재미 교포 관객들은 자막을 보지 않고 대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필자가 고국에서의 학창 시절 국어나 국사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재미있게 각색한 영화쯤으로 생각하고 관람했으나 그 기대는 곧 깨지고 말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 신미대사(信眉大師)가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영화는 영화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림 1. 2019년 7월에 개봉되었으나 역사 왜곡 논란으로 조기에 종영한
영화 <나랏말싸미>의 우리말과 영문 포스터
(한글은 신미대사가 세종대왕보다 먼저 만들었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

그러던 와중에 역사 왜곡 논란으로 영화 <나랏말싸미>가 조기에 종영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신미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신미대사가 주석했다고 알려진 복천암이 있는 충청북도 보은에서 테마공원을 조성했다가 비판에 직면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림 2.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속리산국립공원에 신미대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테마공원 (‘훈민정음고향 보은’이라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속리산국립공원의 3만m2의 부지에는 신미대사를 주인공으로 한 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훈민정음 마당’과 ‘신미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훈민정음고향 보은’이라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보은군이 조선 초기 승려인 신미대사가 속리산 복천암에 머물면서 한글 창제 또는 한글 보급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이런 내용을 모티브로 2018년 11월 속리산 초입의 정이품송 맞은편에 국비 등 55억 들여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바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훈민정음 마당'은 가운데 종각을 중심으로 세종대왕과 신미대사의 동상이 한쪽으로 세워져 있고, 효령대군, 수양대군, 세자(문종), 안평대군, 정의공주의 동상이 맞은 편에 세워져 있다.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을 세종대왕이 아닌 신미대사로 부각시켜 논란이 일었던 '훈민정음 마당'에는 신미대사를 소개한 문구에 세종대왕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했던 승려,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나랏말싸미> 영화가 개봉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이 더욱 거세지자, 보은군은 공원 조성 다음 해인 2019년에 한글 단체 등의 의견을 반영하여 신미대사가 속리산 복천사에서 오랜 기간 주석한 고승으로, 불경 언해를 통해 훈민정음 보급에 많은 공로를 남겼다고 수정하였다. 8개의 담장에 적혀 있던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에 관한 이야기도 신미대사와 복천사에 관한 내용으로 변경하였다. 훈민정음 창제에 관련된 인물 7인 사이에 세워 놓았던 세종대왕의 동상도 이전되었다.

현재, '신미 마당'에는 신미대사(속명 김수성)의 대형 좌상을 중심에 두고 원을 그리듯 이행(신미대사의 외조부), 김훈(신미대사의 아버지), 정부인 여흥 이씨(신미대사의 어머니), 김수온(신미대사의 동생으로 조선시대의 문신), 함허당 득통화상(신미대사의 스승), 학열대사(신미대사의 제자), 학조대사(신미대사의 제자), 수미대사 동상 9개가 조성되어 있다. 테마공원의 정식 명칭도 기존의 '훈민정음 마당'에서 '정이품송 공원'으로 변경되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라는 한글 불서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각선종석보>는 미국 하와이에서 입적하신 일타(日陀) 스님(1929-1999)께서 중국 여행 중 고서점에서 명나라 정통 3년(正統三年, 1438) 천불사(千佛寺)에서 간행한 것으로 적혀 있는 훈민정음이 혼재된 희귀한 한글 불서를 한점 구해오셨다고 한다. 스님 생전에 제1권을 복사하여 경상대 려증동(呂增東, 1933-2020) 교수에게 연구자료로 기증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이 세종 28년(1446)이니 훈민정음 반포 8년 전에 이미 한글로 된 불서가 간행되었다는 의미로 이제까지의 학설과는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2002년 노태조 대전보건대 교수는 <훈민정음>보다 앞선 1438년에 간행한 <원각선종석보>를 발견했다고 불교문화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면서 공론화가 시작되었다, 당시, 노태조 교수는 “일타 스님이 입적한 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유품이 정리되고 원본이 공개되면 진본 여부를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에는 조선 세종태학원 총재 강상원(姜相源) 박사(1938-2022)가 충북 보은군과 보은문화원이 기획한 '신미대사와 훈민정음 창제 학술 강연회'에서 ’<원각선종석보>는 훈민정음보다 8년 앞서 한글의 글자 원리를 실험한 불교 고서'라는 점을 가장 강조하면서 논란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원각선종석보>의 원본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여러 학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2014년에는 소설가 정찬주가 훈민정음 자체를 신미가 만들었다는 내용의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발표하였으며 2019년에는 비슷한 내용으로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원각선종석보>는 2013년 위작설이 불거졌고, 2016년에는 종이의 연대가 현대로 판정되었으며 어법과 제본 방식도 현대식이라는 점을 밝혀지면서 명백한 위서로 판정되었다. 또한, 세조 5년(1459)에 간행된 조선의 불경 언해서인 <월인석보(月印釋譜)>의 내용을 적당히 오려 붙여 만든 위작으로 확인되었다. <원각선종석보>와 <월인석보>의 짜깁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비교하기 쉽게 그림에 여러 색의 사각형으로 영역별로 나누어 표시하였다.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서 모양만 그럴싸하게 짜깁기 된 위작임을 알 수 있다. <나랏말싸미> 영화가 개봉되기 3년 전에 결론지어진 일이었다. 이런 기초적인 검증도 없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사람의 탐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위조한 사람은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서, 이 책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두둔해 온 사람은 명예와 권위를 위해서, 영화 제작에 참여하거나 후원한 사람은 금전적인 이득과 인기를 위해서,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여 테마공원을 조성한 충북 보은군은 지자체의 홍보를 위해서, 불교계는 한글 보급에 불교계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상업영화는 흥행을 목적으로 한 일상적인 경제활동일 뿐인데 역사적 사실을 기대하는 심리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마도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는 세종대왕에 의한 한글 창제를 부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예비지식이 없는 관객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영화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 창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관련학계의 우려도 이해되고 남음이 있다.

그림 3. 세종 28년(1446년)의 훈민정음 반포보다 보다 8년 이른 시기인 정통 3년 (1438년)에 신미대사가 쓴 것이라고 주장된 위서 <원각선종석보>의 일부 (본문의 여러 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은 <월인석보> 제17권의 내용을 짜깁기한 것으로 확인됨)

그림 4. 신미대사가 쓴 것이라고 주장된 위서 <원각선종석보>를 만드는데 사용한 <월인석보> 제 17원 제18장 전엽과 후엽의 내용 (본문의 여러 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을 비교하면 <원각선종석보>의 내용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원각선종석보> 5책 완질이 오케이서적이라는 중고책 거래 사이트에 50만 원에 나왔고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9년에 입적하신 일타 스님이 중국에서 입수하면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 책의 가치는 중고책방의 이윤과 세금을 포함해서 50만 원으로 평가된 셈이다. 380여 장에 달하는 위작은 창의적으로 만든 노력의 시가라고 할 수 있다. ‘잊혀질 만한 시기에 이 책이 다시 세상에 다른 모습으로 나오게 되지는 않을까? 또 다른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까?’하는 노파심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림 5. 중고책방에 50만원에 매물로 나온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 5책 완질은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947년 제작된 요나라 고문서, <고려한글사전>’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고려한글>이라는 책까지 출판되었으며 시청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하여 ‘양자검측(量子檢測)’으로 제작연대를 측정한 결과 947년에 제작된 것으로 나왔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무려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8년보다 무려 499년 앞선 시기인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이러한 노력과 사회적 논란의 시가는 과연 얼마로 판정될까? 40여 년을 과학적 분석 방법을 연구해 온 필자에게도 낯선 ‘양자검측’이라는 해괴한 용어까지 등장하니 일반인에게는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 무척 궁금해진다.

그림 6. 최근에 947년 제작된 요나라 고문서에 한글이 적혀 있다는 책이 소개된 유튜브 동영상의 화면 캡쳐

#나랏말싸미, #원각선종석보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