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한옥에서 만나는 한국근대미술의 선구자들

한국전통화의 산실 이상범가옥서 열린 한국근대미술 세미나

by 김지연 시민기자 승인 2024.09.06 13:53 의견 0

9월 4일 초저녁, 서촌 누하동 작은 골목길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서촌은 원래 근대 문인나 예술가들의 요람이었는데 그 중 한국근대미술의 거목 중 한 명인 창전 이상범의 가옥도 골목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청전화숙 작업실

이날 이상범 가옥에서 한국 근대미술의 가치를 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9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 한 달간 6회에 걸쳐 한옥마당과 마루에서 한국근대미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뜻깊은 행사다.

그 첫번째 강연으로 최열 미술사가의 <근대미술, 그 신세계>가 막을 열었다.

세미나 장소로 이용된 청전화숙(靑田畵塾)은 화가 이상범이 1933년 무렵 종로 누하동에 설립해 전통 회화를 가르키며 제자들을 양성한 화실이다.
배렴, 정용희, 이현옥, 심은택, 박노수, 정종여 등이 이 곳에서 그림을 배우며 한국근현대 화단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동아일보 재직 중 신문 연재소설 삽화. 이상범은 일제강점기 시절 삽화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공주에서 태어난 청전 이상범은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특선말 열 번을 한 산수화의 대가였다.
하지만 화가이기 전 그 유명한 일장기 말살 사건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자 조선 반도는 감격의 도가니가 되었다.



당시 이상범 화백은 동아일보 삽화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손기정의 승리에 들떠 호외를 준비하고 있던 체육 담장 이길용 기자는 일본 신문에서 오려낸 손기정 사진의 일장기가 눈에 거슬렸다. 이길용 기자는 이 화백에게 손기정의 가슴 부분의 일장기를 지워달라고 부탁한다.
이 화백은 곧 일장기를 흰 물감으로 허옇게 문질러 지웠고 8월 25일자 사회면에 일장기 없는 손기정의 모습이 실렸다.
같은 시각, 조선 총독부는 발칵 뒤집혀 동아일보에 정간 처분을 내렸는데 그게 '일장기 말살사건'이다.

이상범<춘경산수도>, 국립중앙박물관


이 사건으로 이상범 화백은 신문사에서 쫒겨난 후 선전 심사위원으로 일하며 1933년 누하동에 화실을 열어 후예들을 양성했으니 어쩌면 우리 미술사의 전화위복일지도 모른다. 1940년대엔 동문전을 여러 차례 개최했고, 이곳 출신 화가들이 1930~1940년대 전통 화단에 큰 획을 그었으니 말이다.

이번 한국근대미술세미나는 2024년도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지원을 받아 개최되었다.

<근대미술, 그 신세계>를 강연 중인 최열 미술사가

4일에는 미술사가 최열의 진행으로 이상범의 생애와 작품은 물론 그에게 영향받은 제자들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전통화가들, 독립투사들의 독창적인 화법과 희귀작들도 프로젝터를 통해 대거 소개되었다.

청전 이상범 <삼선관파>는 창덕궁 경훈각에 그린 궁중장식화다.



9월이지만 여전히 무더웠던 여름밤, 참가자들은 더위와 벌레떼들의 극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즈넉한 한옥에서 대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상범의 생애와 회화세계를 중심으로 근대미술을 조

한옥 마당과 대청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


명하려고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이번 행사는 4일을 시작으로 20일(금)에는 조은정 미술사가가 ‘창덕궁 벽화를 제작한 청년 이상범’을 주제로, 25일(수)에는 목수현 미술사가가 ‘1920-30년대 청년 서화가들’을 주제로, 27일(금)에는 손영옥 미술평론가가 ‘청전 이상범은 어떻게 동양화 인기의 아이콘이 됐을까’를 주제로, 매회 저녁 6시 30분부터 8시까지 이어진다.

오는 10월에도 2회가 더 이어지니 참가를 원하면 홍보 포스터 하단 QR코드로 온라인 신청하거나 현장접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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