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고택 사랑채의 되돈고래
우리가 모르고 있는 함양 일두 정여창 고택의 굴뚝 이야기
전문기자 이재은
승인
2024.09.30 05:28 | 최종 수정 2024.09.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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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조선시대의 동방5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입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모두 각설하고 사랑채의 굴뚝이야기 하나만 드려볼까 합니다. 본래 전통 구들은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법 중 하나로 그 역사가 매우 깊습니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그 불길을 방으로 들여 구들장을 통해 방을 덥힌 후 굴뚝으로 빼내는 것이 기본인데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우리의 전통구들을 경험하고는 전무후무한 세계 최고의 난방법이라 극찬하고 이를 토대로 온수난방시스템을 개발했고 현재 우리는 전 국토에서 단독주택을 비롯한 거의 모든 아파트에서 이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파트 왕국이라 불릴 수 있는 것도 이 시스템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들은 종류가 참 많습니다. 방바닥에서 불길이 흘러가는 길을 고래라 하는데 이것만 가지고도 줄고래, 부채고래, 허튼고래, 되돈고래 등 종류가 많습니다. 이 사랑채는 아궁이와 굴뚝이 동일한 곳에 놓인 되돈고래인데 불을 맨 좌측 아궁이에서 때고 방바닥을 한바퀴 돌아 그 자리로 다시 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아궁이 하나에 굴뚝이 두 개입니다. 크기도 좀 다르고 자세히 보니 높이도 차이가 납니다. 왜 그럴까요? 불을 때면 잠시 후에는 두 개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집을 지은 분, 즉 정여창 선생의 후손은 집을 지으면서 기막힌 발상을 하신 것입니다. 굴뚝이 두 개다 보니 자연히 무거운 연기는 오른쪽으로, 가벼운 연기는 왼쪽 큰 굴뚝으로 나오도록 설계했습니다. 오른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무거우니 온 마당에 구름처럼 낮게 깔리면서 고온다습한 고택에 소독을 해주는 역할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지금은 저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습니다. 아궁이에 잡초도 나고 주변에 이끼도 끼어있습니다. 문화재다보니 당국에서 청소도 해주고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눈에 보이는 곳만 그렇습니다. 아무리 잘 관리해도 저 아궁이 속이며 고래며 굴뚝 내부까지는 불가능합니다. 우선은 소방당국이나 문화재를 관리하는 부서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면 큰 일이 날 것처럼 경계합니다. 전통구들의 구조를 잠깐만 들여다보면 화재가 날 염려는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저 속을 잠깐만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불을 때지 않으니 고래바닥은 늘 습기가 차 있습니다. 흰개미를 비롯한 각종 해충들의 서식처입니다. 방 아래에 놓인 기둥이나 인방을 비롯한 가로 부재들은 마찬가지로 잔뜩 습기를 머금고 건물의 수명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문화재가 흰개미의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지고 모르는 일입니다. 500년이 넘는 이 고택을 잘 지켜내는 일은 가끔 한 번씩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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