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뫼마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광주문화유산지킴이가 찾은 황토현전적지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와 도계리 사이 위치한 해발 35.5m의 언덕으로,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상대로 최초 전투를 벌여 최대 승리를 거둔 장소이며 1981년 12월 사적 295호로 지정됐다. 이 일대에 2014년부터 모두 32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30만 1329m² 규모로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탑, 교육관, 기념관, 사발통문 광장 등과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기념하여 새로이 조성된 전시관, 추모관, 체험관 등이 있으며 특히 전국 90곳에서 일어난 동학농민군을 상징하는 90개의 '울림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울림의 기둥<사진 김낙현>
◆신임 군수 박원명의 회유를 받아들여 잠시 해산했던 농민군은 안핵사 이용태의 폭정에 맞서 다시 집결하게 되었다.
전봉준 셍기<사진 김낙현>
◆ 추격을 피해 무장에 머물고 있던 전봉준은 동학조직의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손화중을 설득하여 무장에서 창의문을 낭독하고 인근 동학 접주들에게 통문을 돌려 보국안민(輔國安民) 과 교조의 신원(伸冤)을 위하여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 1894년 3월 21일 전봉준이 먼저 점령한 백산(白山)에 1만여 명의 농민들이 농민군대를 조직하여 격문, 4대 행동강령, 12개 조 군율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을 선포하였다. 이때 흰옷에 죽창을 들고 모인 8천여 농민군의 질서정연한 모습에서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이라는 상징적인 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백산의 모습
<농민군 12개 조 군율>
항복한 자는 잘 대우한다. 7. 도망가는 자는 쫒지 않는다.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8. 가난한 자는 구해준다.
욕심부리는 자는 추방한다. 9. 거역하는 자는 효유한다.
순종하는 자는 경복한다. 10. 병자에게는 약을 준다.
굶주린 자는 먹인다. 11. 불효자는 죽인다.
간활한 자는 없앤다. 12.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4대 강령>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백성의 가축을 해하지 않는다.
충효를 다하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
일본놈을 몰아내고 성인의 도를 깨끗이 한다.
서울로 진격하여 나라를 망치는 간신배를 처단한다
< 격 문 >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박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출하고자 함이다.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 수령 밑에서 굴욕을 받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돌이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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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 음력 3월,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 동학농민군들이 백산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들은 전라감사 김문현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전라감영군과 보부상군 2,300여 명을 출동시켰다. 음력 4월 6일(양력 5월 10일) 감영군이 진격해오자 이곳 지형에 익숙했던 농민군은 유리한 지점으로 그들을 유인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농민군은 사시봉에 진을 쳤고, 감영군은 황토현 부근에 진을 쳤다.
◆전봉준은 이날 밤 감영군의 기습공격을 예상하여 진지를 비워둔 채 허수아비와 나뭇가지에 흰 옷가지를 걸쳐 위장하고 농민군을 주위에 매복시켰다. 음력 4월 7일 (양력 5월 11일) 새벽 감영군이 농민군 진지를 습격하자 미리 매복해 있던 농민군이 나타나 역습하였고 혼비백산 도망치는 뒤를 쫓아 감영군의 진지마저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날 승리를 계기로 농민군의 사기가 크게 높아졌으며, 이후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5월 11일이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지정된 것도 황토현 전투의 승리가 갖는 의미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 조형물<사진 김낙현>
◆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들은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을 알아보며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