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만 한국문화유산교육센터장

우리나라에는 국가지정문화재뿐만 아니라 광역시·도 지정문화재, 시·군 향토문화재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당수의 유산이 관리와 활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비지정문화재는 단순한 옛 건물이나 유물이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든 살아 있는 유산이다. 이제 국가유산지킴이들은 이들 유산을 새롭게 조명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지정문화재는 관리 대상에서 소외되어 보존이 미흡한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지정문화유산보다 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기존의 ‘보호’ 중심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발굴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특정 고택이 단순한 오래된 집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았던 인물과 그 가족의 삶, 지역과의 관계를 담은 공간으로 재해석된다면, 이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특히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홀리데이 코티지(Holiday Cottage)’ 사례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모델이다. 고택을 숙박시설로 활용하면서, 방문객이 유산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고, 주변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체험하며 배우는 과정이며, 우리의 비지정문화재도 이런 방식으로 적극 활용될 수 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정부나 특정 기관만의 몫이 아니다. 시민과 지역사회가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지속 가능성이 보장된다.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가 문화유산 국민신탁(National Trust) 단체로 인증받은 것은, 국가유산지킴이 운동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내셔널 트러스트 모델을 적극 활용하면, 단순한 보호를 넘어 문화유산을 지역 경제와 연계하여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비지정문화재를 목록화하고, 특색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며, 숙박·전시·체험·기념품 개발 등 다각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이를 국가유산청의 사업, 지자체 활용 사업, 내셔널 트러스트 조직의 프로젝트 등과 연계하여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가야 한다.

문화유산 보호는 더 이상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활용을 통한 보존으로 가야 한다. 지정문화유산이든 비지정문화유산이든, 그 가치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어야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지킴이는 이제 문화재지킴이 2.0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 방법론으로는

① 비지정문화재 조사 및 스토리텔링 구축 : 지역별 문화유산을 목록화하고,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담은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
② 내셔널 트러스트 방식의 활용 모델 도입 : 유산을 직접 매입·관리·운영하며 숙박, 체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③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계 : 유산을 활용한 숙박·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관광과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
④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 마련 : 국가유산지킴이, 지역 단체, 지자체, 기업이 협력하여 장기적인 운영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국가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함께 살아갈 자산이다. 국가유산지킴이들은 이제 지정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비지정문화재까지 포괄하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내셔널 트러스트 모델을 적극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 보호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비지정문화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국민과 공유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것. 국가유산지킴이가 그 중심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