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대비의 서궁일기』

김용목 전문기자 승인 2024.10.15 18:12 의견 0


『서궁일기西宮日記』는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仁穆大妃와 따님인 정명공주貞明公主가 지으신 사실 기록이다.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년 선조 17년~1632년 인조 10년. 선조의 계비로 연안延安 김씨金氏다.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딸로 1602년 선조 35년에 왕비에 책봉되었고, 1603년 정명공주貞明公主를 낳고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이때 광해군은 세자의 지위에 있었으나 당시 유영경柳永慶 등 적출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한 뒤, 동복형인 임해군臨海君을 제거하고 영창대군을 폐서인 시킨 뒤 외조부 김제남을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폐비시켜 서궁西宮에 유폐하니 이러한 패륜행위로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인목대비는 다시 복호되고 대왕대비가 되었다.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는 친필 일부가 전하고, 존호는 소성정의명렬昭聖貞懿明烈이고, 휘호는 광숙장정光淑莊定이다.

『서궁일기西宮日記』는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仁穆大妃와 따님인 정명공주貞明公主가 지으신 사실 기록이다. 광해군光海君에 의해 대비의 궁호를 서궁으로 거처하는 경운궁도 서궁(西宮, 현 덕수궁德壽宮)으로 편하여 유폐幽閉시키고 있을 때의 참혹한 참상과 광해군의 포악무도暴惡無道하고 인륜人倫을 저버리고 임해군臨海君의 사사賜死와 어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증살蒸殺 등 인조반정仁祖反正까지의 궁중비사宮中秘史를 다룬 그 당시 사건을 인목대비가 친필로 쓰신 해서楷書가 돋보이고 서궁일기 하권은 정명공주가 친히 지으신 모녀가 친제한 것이 서궁일기 천天 지地 인人이다. 그리고 계축일기癸丑日記는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비廢妃 때에 중고모仲姑母가 되는 정명공주貞明公主의 며느리인 여흥민씨驢興閔氏에게 서궁일기西宮日記를 빌려 보시고 난 후 필사筆寫한 전본典本이 바로 계축일기癸丑日記로 계축일기란 제목은 선대 왕비의 폄하된 궁호인 서궁西宮은 계축년의 옥사가 바로 폐비의 상징의 중심이 되는 것을 피하고 선대 왕후를 받드는 뜻에서 인형왕후가 필사하면서 서궁일기를 계축일기라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홍기원 역교주, 신국판, 양장, 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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