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高敞邑城)의 둘레길, 건강과 영혼의 구원을 위한 세 바퀴 도전!

- 고창읍성은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읍성이다
- 여성들의 성벽 밟기 풍습, 고창읍성의 독특한 문화를 느껴보세요!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4.06.28 18:48 의견 1

고창읍성 전경과 답성놀이 장면(사진제공 문화재청, 고창군 홈페이지)


고창읍성(高敞邑城)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위치한 읍성으로 해미읍성(海美邑城), 낙안읍성(樂安邑城)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3대 읍성이다.

고창읍성(高敞邑城)은 현지에서는 일반적으로 "牟陽城(모양성)"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 명칭은 백제 시대 때 고창의 옛 명칭이었던 "모량부리(毛良夫里)"에서 유래되었다. 고창지역은 옛부터 눈이 많이 내려, 보리 농사가 잘되었기 때문에 "보리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모량부리(毛良夫里)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창읍성의 전경과 성곽 안내도(사진촬영 김오현)

▶ 고창읍성 (高敞邑城)

종 목 사적 제 145호
명 칭 고창읍성
지정일 1965. 04. 01
소재지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번지

옛 고창 고을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毛良夫里)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고창읍성이 일반적인 다른 읍성들처럼 평지 그것도 읍내의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읍내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방장산(方丈山, 반등산)에 세워진 것은 왜구를 방어할 목적으로 축조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인근의 장성 입암산성(사적)과 연계하여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고창읍성의 축성연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성 둘레 1,684m에 높이 4~6m로, 동·서·북문과 옹성(甕城, 항아리 모양처럼 만든 성) 3개소, 치성(雉城, 성벽 바깥에 덧붙여 쌓은 벽) 6개소, 해자(성벽을 따라 판 방어용 연못) 등 방어 시설을 두루 갖춰져 있다. 성벽은 일반적인 읍성처럼 자연 할석(割石, 깬 돌)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성벽의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사용된 성돌(성을 쌓는 데 쓰는 돌)의 크기가 작아진다. 성돌과 성돌 사이에는 틈이 많아 작은 쐐기돌 같은 것으로 메워 넣었다.

고창읍성의 공북루와 주변경관
고창읍성의 풍화루, 동헌, 내아 등의 전경


읍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우물 4개소, 연못 2개소, 수구문(水口門, 성안의 물이 성 밖으로 흘러 나가는 수구에 만든 문) 2개 등이 있다. 그리고 성내에는 모두 22동의 관아 건물이 있었다. 이중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갖춘 객사와 내아, 동헌 등에서 <사도> · <화정>ㆍ<미스터 션샤 인> 등과 같은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했다. 특히, 읍성의 정문은 홍예식(虹霓式)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고창읍성 북문의 문루인 공북루(拱北樓)는 주춧돌 위에 문루를 세우고 문을 만들었다. 즉 고창읍성의 정문 격인 공북루는 마치 관아의 외삼문(外三門)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창읍성의 딥성놀이 장면 사진(사진촬영 고창군 홈페이지)


고창읍성은 여성들이 쌓았다는 설화가 있는데,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고창성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창성에 얽힌 이야기"는 고창성이 남자와 여자의 성 쌓기 내기를 통해 성을 쌓았다는 축성담이다. 고창성에는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며 도는 답성놀이(성 밟기)가 전해지는데, 이렇게 하면 오래 살며, 죽어서는 극락왕생을 한다는 전설도 있다. 성을 쌓을 때 남자와 여자가 패를 나누어 성 쌓기 내기를 했는데 남자들은 현재의 아산면에, 그리고 여자들은 현재의 고창성 자리에 성을 쌓기로 했다. 두 곳이 서로 마주 보이는 자리여서 여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남자들에게 빤히 보였다. 그런데 여자들이 성을 쌓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남자들은 만날 술이나 먹고 낮잠이나 자며 빈둥거렸다. 하지만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성의 2/3를 먼저 완성해 놓고 나중에 1/3을 마저 완성하여 성 쌓기 내기에서 승리하였다. 이렇게 여자들이 쌓은 성이 바로 고창성이고, 남자들이 쌓기로 한 성은 축성되지 못하고 현재 아산면에 성터만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가 패를 나누어 성 쌓기 내기를 하였는데, 꾀를 낸 지혜로운 여자들이 어리석은 남자들을 속여서 내기에 이겼다는 지략담이기도 하다.

고창읍성의 둘레길 전경 모습들...(사진촬영 김오현)


이와 관련해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얹고 성곽 길을 도는 성 밟기(답성 놀이)가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있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성을 한바퀴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 성을 돌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번 돌아야 하고 일정한 지역에 그 돌을 쌓아두도록 하였다. 특히 윤삼월의 효험을 강조하고 있음도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굳게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하는 것도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다지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고창읍성의 둘레길과 맹종죽림길 모습


고창읍성은 역사, 자연, 문화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관광 명소이다. 봄철의 철쭉 꽃길, 소나무 숲길, 아름다운 성곽과 전설 속 성곽 둘레길 밟기, 시원한 맹종죽림길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족, 친구, 연인 누구와 함께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건강을 증진시키고, 고창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곳으로 한번쯤 방문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참고문헌

1. 일요시사, [꽃길만 걷자, 고창읍성], 한국관광공사, 2022.

2. 심덕섭, [고창읍성], 고창군 홈페이지 , 2024.

3. 권은영, [고창성에 얽힌 이야기], 디지털고창문화대전, 2024.

4. 최응천,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자료], 문화재청,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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