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 101호)

113년만에 귀향한 국보

원영혜 전문기자 승인 2024.12.23 08:24 의견 0

이전 전의 국보 제 101호

이 승탑은 고려 시대의 고승 지광국사 해린(984~1067)의 묘탑으로 원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 터에 있던 것인데, 1912년에 일본인이 몰래 일본으로 가져갔으나 발각이 되어 3년 후인 1915년에 되돌려 받아 경복궁에 세워졌다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를 거쳐 현재는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귀향하였다.

탑의 받침대에 해당되는 기단부에는 여러 단을 두어 꽃, 상여, 신선, 장막 등을 장식하고 탑의 몸체에도 페르시아 풍의 창문을 내고 드림새 장식을 하였으며, 지붕과 꼭대기에도 불보살상, 봉황, 연꽃 등의 화려한 무늬로 장식되었다. 이 승탑의 지광국사의 장례때 사리를 운반하던 화려한 외국풍의 가마를 본떠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승탑은 고려시대에 들어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새롭게 고안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광국사는 고려 전기의 이름난 고승으로 현종 임금과 문종 임금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데, 특히 문종 임금은 지광국사를 왕사로 삼았다가 훗날에는 국사로 임명하였다. 이 승탑은 선종 2년(1085년) 무렵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탑이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탑은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을 두어 땅에 밀착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7단이나 되는 기단의 맨윗돌은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탑신에는 앞뒤로 문짝을 본떠 새겼는데, 사리를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치켜올려져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머리장식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렸는데, 비교적 잘 남아있다.

탑신 문양
갑석 문양
갑석 문양
기단 안상 문양
상륜부

탑 전체에 여러 가지 꾸밈을 두고,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등 자유로운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데도,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으로 인해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문화재청은 건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복원 위치를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 내에 위치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결정했다.
보존처리가 끝난 지광국사탑의 복원위치를 두고 그동안 승탑의 원래 자리이던 승탑원에 보호각을 세운 후 그 안에 복원하는 방안과 법천사지 안에 이미 건립되어 있는 유적전시관 내부에 두는 두 가지 방안이 논의되어 왔으며, 문화재위원회는 승탑원이 지형상 24톤에 달하는 지광국사탑의 하중을 견디기 어려운 점과 보호각을 추가로 세워야 하는 환경적 측면을 고려하여, 내진구조로 설계되어 있고 지광국사탑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법천사지유적전시관’에 복원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기단 네 귀퉁이에 있던 사자상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오다 탑과 함께 옮겨졌다.

높이 6.1m의 승탑은 세부가 매우 화려하고 섬세한 수법으로 이루어져 당대의 청자기와 함께 고려 미술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부도로서 중요하다.

113년만에 귀향한 국보 제 101호

마침내 2024년 11월 12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 복원을 마치고 공개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천년의 숨결의 엄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원영혜 전문기자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