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지 천년역사관 앞에서 단체사진(사진촬영 오현)
사단법인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회장 오덕만)소속의 광주광역시 기아문화재지킴이동호회(회장 김오현)와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단장 임인식)에서는 지난 4일(일) 사적 제307호 성주사지와 충청수영성 등 보령시 일원에서 문화교류 행사를 통해 두 지역 간의 문화유산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파급효과와 문화재 유물과 유적의 활용을 통한 홍보대사 역할을 충분히 하여 향후 지역경제 효과 및 문화재의 활용 가치에 새로운 동기부여가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행사는 광주광역시 기아문화재지킴이동호회에서 보령문화재지킴이봉사단의 초청으로 문화교류 행사로 광주광역시에서 새벽부터 40명이 출발하여 오전 9시 성주사지에 도착하여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의 환영 속에 상호 상견례 인사 및 방문기념품 교환 등 일정대로 행사를 진행했다.
▶보령 성주사지(保寧 聖住寺址)
성주사는 백제 시대에 오합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절로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호국사찰이었다. 백제 멸망 후 폐허가 되었다가 통일 신라 시대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선종의 대가인 “무염 대사(낭혜 화상)를 당시 웅천 (현, 보령)지방 호족이었던 김양(金陽)”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다시 크게 일으켰고 신라 문성왕이 성주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통일신라 말기에 유행한 선종은 어려운 불경을 모르더라도 수양을 잘하기만 하면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불교 종파이다. 그리하여 많은 백성의 지지를 받아 크게 유행하였고, 선종 불교의 큰 중심지 절이 전국에 9개가 세워졌는데, 이를 9산선문이라고 한다. 이 전국 9산선문 중의 하나가 성주산문이며 그 중심지가 성주사이다. 특히 성주산문은 9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고 많은 승려를 배출한 최대의 산문이었으며, 무염 대사는 당시 최고의 선종 승려였다.
성주사는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을 겪으며 쇠퇴하다가 17세기 말 폐사되었고, 지금은 그 터와 많은 유물이 남아 있어 옛 성주사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발굴 조사 결과 중문-석등-5층석탑-금당의 불 대좌-강당으로 이어지는 1탑 1금당 가람 배치에, 오른쪽은 삼천불전지, 왼쪽은 다른 불전지의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이 터에는 국보 제8호인 대낭혜화상 백원보광탑비를 비롯하여 통일 신라 시대 석탑 양식을 충실히 반영한 1개의 5층 석탑과 3개의 3층 석탑이 남아 있다.
▶보령 충청수영성 (保寧 忠淸水營城)
충청수영성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에 수군 수(水軍數)가 총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선조 26년(1593), 79세에 충청 수사가 된 정걸 장군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에 화살 수만 발을 운반하여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선조 29년(1596), 충청 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 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충청 수영성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내의 영보정이 유명했고,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충청수영의 군율 집행터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곳이다.
근대에 들어 도로개설이나 호안 매립 등으로 인하여 훼손된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충청 수영성은 나머지 성지(城址)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 목적에서 마련된 충청지역 수군 지휘부로써 충남의 수군 편제와 조직, 예하 충청지역 해로(海路) 요해처(要害處)에 배치되었던 수군 진과의 영속 관계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대천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3.5km, 폭 100m에 달하는 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남쪽에 기암괴석이 잘 발달 되어 있어 비경을 연출하며, 수온 역시 적당하여 기분 좋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모래질은 동양에서 유일한 패각분으로 조개껍질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잘게 부서져 모래로 변모한 것이다. 백사장 너머에는 해송 숲이 울창하고 아늑하여 해송숲 그늘에 앉아 바다의 정취를 깊이 즐기며 야영장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곳이다. 매년 7월 중ㆍ하순 보령머드축제가 열리며 최근에는 보령 지역의 우수한 야생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하고 2016년 11월 야생화 축제를 개최하였다.
대천해수욕장 인근 성주산 자연휴양림의 편백나무 숲에서 피톤치드로 산림욕을 할 수 있으며, 개화예술공원에서는 예술작품과 꽃을 감상할 수 있어 가족 단위나 연인들의 관광 체험 1일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매년 7월에 열리는 머드축제에 참가하려면 주차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드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여벌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상화원(尙和園)
'보령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섬 '죽도'에 오시면, 한국의 전통미와 자연미가 살아 숨 쉬는 한국식 정원 '상화원(尙和園)'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죽도 '상화원'은 북쪽으로는 서해안 대표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5km), 남쪽으로는 바다가 열리는 무창포해수욕장(5km) 사이 중간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는 육지와 제방으로 연결되어 교통의 편리함을 갖추었습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정원으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돌담과 회랑, 그리고 전통 한옥과 빌라 등이 한데 어우러져, 걷고 싶고 쉬고 싶고 만나고 싶은 공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섬 전체를 둘러싼 1.65km 구간의 지붕형 '회랑'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서 눈비가 와도 해변 일주를 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으며, 새롭게 조성된 '석양 정원'은 바다 가까이에서 바위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물보라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상화원의 황홀한 석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회랑을 따라 섬 한 바퀴를 돌기만 해도 상화원의 주요시설을 거의 감상할 수 있으며, 곳곳에 꾸며진 해변 연못과 정원 등을 만나면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조망하실 수 있습니다.
1. 김명래, [충청수영 객사와 영보정 연구], 보령문화원, 2018.
2. 황의호, [보령 문화재], 보령문화원, 2023.
3. 최응천,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자료], 문화재청,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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